세상을 놀라게,..


/Story /Adventur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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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ifth Section

    Saint-Marc, Haiti

    아이티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세인트 마크였다. 미리 연결된 아이티 와이웸 디텍터, 테리 스노우Terry Snow의 아들, 크리스찬Kristian을 만났다. 크리스찬은 베이스에서 미디어 디렉터로 일하고 있었고,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을 아이티에서 지내 현지 언어인 크레올어Creole에 뛰어났다. 크리스찬과 다시 차를 타고 함께 1시간 이상 달려 5 섹션이라는 시골로 들어갔다.

    Fifth Section

    5 섹션 지역은 평평한 평지였다. 모두 논이었다. 하지만 가는 길은 험했다. 오프로드이고 진흙 투성이였다. 진흙을 피하기 위해 내가 탄 차는 45도로 아슬아슬하게 기우리기를 반복했고, 4륜구동의 지프차였지만 헛바퀴 돌리기 십상이었다.

    마을 옆으로 흐르는 강이 넘쳐 집이 무너진 한 마을에서 촬영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비가 와서 물이 넘쳤다며 우리에게 자세한 상황을 알려주었다.

    마을 아이들은 길 옆의 작은 수로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물에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는 아주머니들도 볼수 있었다. 하지만 안전한 물 처럼 보이지 않았고, 이 물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이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Muddy Road

    촬영을 마치고 더욱 깊숙히 위치한 마을로 가는 길에 우리 차는 결국 진흙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함께 탄 이들은 모두 내려 차를 밀기 시작했다. 바지와 신발, 옷가지, 모두 진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빠져나오기는 커녕 차는 늪에 빠진 듯 더욱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주위의 마을사람들은 하나 둘 함께 차를 밀어주었고 다행히 차는 진흙에서 빠져 나왔다. 우리는 더욱 깊은 마을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 나왔다.

    처음으로 피부로 아이티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은 나의 살을 태웠고 땀은 어느새 나의 못을 다 적셨다. 촬영은 실수투성이었다. 낮선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그래도 큰 경험, 배움의 시간이었다.

     마을에서 나오는데 한 사람이 물과 관련된 두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두가지 문제는 피부병, 그리고 진흙탕 길이었다. 공감할 수 있었다.

    Cholera

    아이티에서 나오고 몇일 후 테리 스노우의 글을 보았다. 세인트 마크 5섹션 지역에서 콜레라와 같은 증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앓고 있다며 기도를 부탁하는 글이었다. 10월21일 작성된 글이었다.

    이 후 콜레라라고 병명이 발혀졌고 지금(25일)까지 아이티 전지역에서 1,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고, 점점 더 피해가 심해지고 있다. 안타까운 뉴스였다. 콜레라는 위생과 관련해 특별히 오염된 물을 섭취해 걸리는 수인성 질병이다. 빨리 콜레라가 아이티에서 사라지고, 모든 아이티인들의 안전한 물 섭취가 쉬워지기를 기도한다.


    Haiti Episod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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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Arrived in Haiti

    Arrival

    달라스 공항에서 모든 절차를 마치고 아이티행 티켓까지 받았다. 다행히 짐은 아이티에서 찾으라고 해주셨다. 수속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끝냈다. 한시간을 날아 플로리다 탬파공항에 도착했다. 달라스에서 탬파까지 비행기에서의 야경은 멋졌다. 탬파공항은 어둡고 사람들이 없었다. 한 공항 스텝은 알아서 편안하게 자라며 충고해주셨다. 공항의 음악과 조명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불편한 의자에서 나름 깊이 잘 수 있었다.

    새벽이 되자 사람들이 서서히 공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일어나 따뜻한 스타벅스 커피와 바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마이애미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이애미에서 아이티행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 아이티의 상공에서 캐리비안의 에매랄드빛의 아름다운 바닷가와 텐트촌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아이티에 도착했다. 확실히 더위가 느껴졌다. 포투아프린스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하고 짐을 찾는데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짐을 어렵게 찾아 공항을 나오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Centre of Port-au-Prince, Haiti

    아이티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 보다 좋지 않았다. 아동노동, 불법 성매매, 높은 문맹률과 낮은 교육률, 많은 홈리스들 그리고 높은 실업률, 독재와 부패, 마약과 갱단, 그리고 높은 물가까지… 2004년과 2008년 아이티는 이미 큰 홍수로 어려움을 겪었고, 2010년 지진은 아이티에 다시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희망을 잃은 채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공항에 도착한 순간 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지상황은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숙소 밖을 나가는 것 조차 언어와 안전의 제한으로 쉽지 않았다. 도착하고 처음 몇일은 숙소에만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팀과 함께 기도할 수 있었고, 이후 아이티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Haiti Episod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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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스위스 다보스로 가다

    세계경제포럼과 다보스

    매년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열린다. 경제위기로 시작된 올해 (2009)도 어김없이 다보스에 2000여명의 영향력 있는 리더들이 모여 세계 경제와 사회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 했다.

    확인해보니 세계경제포럼의 프로그램에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오픈 포럼Open Forum도 있었다. 나는 우리 팀의 리더 마이클Michael에게 함께 오픈포럼에 참석하자고 제안했지만, 2월에 있을 워크샵까지 마쳐야 할 일이 많다며, 그래도 나 혼자라도 다녀 오라며 흔쾌히 여비까지 쥐어줬다.

    다보스로 가기 위해 하프-프라이스Half Price 카드를 만들었다. 카드에 붙일 사진을 잘못 가져가 Nyon니옹 역을 두 번이나 왔다 갔지만 카드를 만들어주신 아저씨가 너무나 친절해 기분이 좋았다. 이 동네에서 이렇게 친절한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옆에 있던 친구가 말렸다. 150프랑을 들여 만든 이 카드는 스위스의 기차와 배, 버스 그리고 케이블카를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을 1년 동안 반값으로 이용하는 카드다. 이 카드야말로 머스트 해브Must Have이다!

    다보스로 가다!

    다보스로 가는 길은 루가노Lugano로 가는 베이스 스텝, 로베르토Roberto가 루체른Luzern까지 태워줘 차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다. 프랑스어를 쓰는 버티니Burtigny에서 출발한 우리는 어느새 독일어를 쓰는 루체른에 도착했다. 그리고 로베르토는 이탈리아어를 쓰는 루가노를 향해 출발했다. 그는 하루에 3개 국어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즐거워했다. 나는 루체른에서 다보스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내가 탄 기차는 호수를 지나고, 넓은 들판을 지나, 어느새 산을 오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위해 갈아탄 기차는 글레시어 익스프레스Glaciar Express, 기차 내부 거의 모든 면은 커다란 창이 설치되어 있어 뛰어난 경치를 관람하기 쉬웠다. 스키어들도 스키와 함께 기차를 탔다. 스키어들은 ‘기차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알프스의 풍경과 산의 구석구석으로 스키를 타고 나무들을 재빠르게 피해 내려오는 스키어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스키를 즐기던 스키어들로 인해 기차 안은 어느새 땀 냄새와 열기로 가득해졌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던 기차는 이제는 평지를 달리고 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하나 둘 보이고 다보스에 도착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해발 1500m에 위치한 다보스는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겨울 스포츠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과 다보스 포럼 참가자들, 세계 각국의 기자들, 경찰과 군인, 포럼 반대 시위자들까지, 사람들로 넘쳐났다. 세계의 정상급 리더들이 모인 곳인 만큼 경계도 삼엄했다. 구석구석에 무전기와 선글라스를 갖춘 경호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보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지붕 위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도로는 녹다 만 눈이 눅눅하게 남아있었다. 각국의 정상과 경제계 리더들을 태운 검은 세단들은 슬러쉬로 가득 찬듯한 도로 위를 느릿느릿 지나 다녔고, 하늘 위로는 눈 조각들을 날리며 지나 다니는 헬기들도 간간히 보였다. 나는 내가 선택힌 포럼 세션에 늦지 않기 위해 미리 장소를 알아두고 오늘 머물게 될 YWAM Davos 사무실을 찾아갔다. 다보스가 워낙 작아 사무실를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스텝은 없었지만 내가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미리 이메일로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매년 스노우보딩 스쿨을 여는 YWAM Davos의 사무실은 보통 방 하나 크기로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숙식 가능한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오픈포럼

    내가 참석한 오픈 포럼의 세션에는 전UN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Kofi Annan과 가이아나Guyana 대통령인 바라트 자데오Bharrat Jagdeo 등의 글로벌 리더들이 참여하여 약 2시간 동안 환경문제에 대해 논쟁하였다. 짧은 시간이었던 만큼 새로운 쟁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많은 이들은 2009년 경제위기의 이유로 ‘미국 은행들의 욕심’, 도덕적이지 못한 기업 운영이라는 점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로 ‘욕심’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환경과 경제 문제 뿐 아니라 모든 문제들의 중심에 ‘욕심’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며 나는 다시 기차에 올랐다.

    /Tim /February, 2009 /re: August, 2010

  6. Photo
  7. Damaged houses are seen after a rain-triggered landslide hit Shuanghe village in Hanyuan county, Sichuan province, China. 
중국 쓰촨성 슈앙허 마을의 산사태 피해 현장. 이날 아침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며 21명이 실종됐다 /Stringer /July 27, 2010

    Damaged houses are seen after a rain-triggered landslide hit Shuanghe village in Hanyuan county, Sichuan province, China. 

    중국 쓰촨성 슈앙허 마을의 산사태 피해 현장. 이날 아침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며 21명이 실종됐다 /Stringer /July 27, 2010

  8. Photo
  9. 멕시코 몬테레이Monterrey에서 약 295km 떨어진 아람베리Aramberri의 허리케인 피해 현장. 허리케인 ‘알렉스Alex’가 강타한 이 지역에서는 1년치 강우량이 사흘 만에 쏟아지며 블랑코강Blanco River이 범람했다. /Tomas Bravo /July 18, 2010

    멕시코 몬테레이Monterrey에서 약 295km 떨어진 아람베리Aramberri의 허리케인 피해 현장. 허리케인 ‘알렉스Alex’가 강타한 이 지역에서는 1년치 강우량이 사흘 만에 쏟아지며 블랑코강Blanco River이 범람했다. /Tomas Bravo /July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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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독일: 아우토반과 프랑크푸르트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

    "아우토반에autobahn에 가봤어?" 독일인 친구에게 물었다. "그럼" 그는 대답했다.

    그러면서 ‘아우토반’은 고유명사가 아닌 명사로 ‘고속도로’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독일어로 아우토auto는 자동차를, 반bahn은 도로를 뜻한다. 즉 ‘고속도로’가 영어로 ‘하이웨이highway’ 또는 ‘프리웨이freeway’인 것처럼 독일어로 ‘아우토반’인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들었던 속도제한이 없다는 ‘아우토반’은 독일의 모든 고속도로인 것이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세계 최초의 현대적 도로망으로 사람들은 주거지와 산업 지역을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며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학기가 끝나고 독일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우리를 데리러 친구의 어머니가 차를 운전해 오셨다. 우리가 있는 스위스 버티니Burtigny에서 친구의 집까지 차로 약 8시간 걸린다고 했다.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에서 내가 탄 차의 평균 속도는 140km 였다.



    유럽의 멘하탄, 프랑크푸르트

    친구의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도시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가게됐다. 프랑크푸르트는 금융과 교통의 중심지로서 약 65만명의 인구가 사는 독일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친구의 집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2층칸 기차는 그날 처음 타봤다. 약 45분 후 프랑크푸르트 역에 도착했다. 유럽의 멘하탄Manhattan이라고 불리우는 만큼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었다. 오래간 만에 즐기는 대도시 풍경이 었다. 우리는 걸어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저 멀리에는 유명한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상업은행 본부Commerzbank Headquarters 빌딩이 눈에 들어 왔다.


    라인Rhein강변에서 본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과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상업은행 본부

    조그마한 자동차들이 진열되어있는 장난감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안은 자동차들과 기차, 집 등의 미니어처들로 가득 진열돼있었다. 비싼 가격을 확인하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은 아니겠군’이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나도 하나 갖고 싶은 미니어처 자동차들

    큰 성당이 있는 곳의 골목으로 들어가니 이층짜리 책방이 나타났다. 책을 파는 가게라는 생각보다는 커다란 서재 같다고 느꼈다. 다양한 주제와 종류의 책들은 책방을 멋지게 꾸며주고 있었다. 집중한 채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고르는 사람들은 굉장히 지적으로 보였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나는 건축책을 뒤적거렸다. 생태적으로 현대건축을 표현한 내용을 담은 책의 합리적인 가격에 나는 그 책을 사야만 했다.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던지 건축책은 언제나 영어 번역이 포함되어 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유럽 사람들의 알뜰함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길거리여기저기에 앉아 미리 싸온 샌드위치를 꺼내 먹고 있었다. 빈손으로 집에서 나와 매일 점심을 사먹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와 다른 외식문화를 보았다. 우리의 다른 문화를 아셨는지, 친구의 어머니가 특별히 점심을 사먹으라고 돈을 주셔서 우리는 버거킹BurgerKing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상점과 백화점 그리고 길거리에는 선물을 사러온 사람들로 인해 분주했다. 우리는 유명한 뢰머광장Romerberg에 도착했다. 건축물의 양식과 광장을 감싼체 함께 붙어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15세기 부터 세워진 건물들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기대했던 뢰머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끝나고 화물트럭들로 가득했다. 어제 끝났다고 한다. 여기서 파는 사과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뢰머광장의 모습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라인강을 건너 강을 따라 걸었다. 날씨가 많이 흐려있었고 해도 저물고 있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길을 걷다 한 골목에 모여있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다 우리는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기자기한 상점등이 모여있는 거리를 걸었다


    /Tim /December, 2008

  12. Photo
  13. 요르단을 가다!
중동에 대한 색안경을 벗어라! 신념은 진실이 아니다
중동(Middle East)를 생각할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무엇일까? 테러, 두려움, 무슬림, 기름, 반미, 빈라덴?우리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동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치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볼땐 전쟁중인 국가, 그래서 위험한 나라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남북의 대립, 유일한 분단 국가! 하지만 우리는 전혀 문제없이 살고 있다. 내가 가서보니 중동도 마찬가지였다. 중동의 사람들도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고, TV속의 스타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2008년 1월, 요르단을 갔다. 겨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겨울처럼 심하게 춥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가을’이었다. 겨울이지만 눈은 한해에 한두번 정도 내린다고 한다. 그리고 밤과 낮의 온도차는 크다. 그래서 추위가 더 느껴졌다.


Queen Alia International Airport in Amman, Jordan모든 이슬람 국가가 그렇듯 요르단도 하루에 5번 모스크에서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요르단에 머무르는 동안 새벽 5시쯤 울리는 기도소리에 가끔 깨곤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무섭기도 했다. 이슬람 사람들은 기도시간이 되면 양탄자를 깔고 메카 Mecca مكة (이슬람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출생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 행정, 상업의 중심지)를 향해 기도한다. 어느곳에 가든 기도하는 많은 이들을 쉽게 만날수 있었다.
중동의 많은 국가들의 수입원은 기름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요르단이 기름이 없는 중동의 국가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있는가? 그래서 요르단의 산업별 구성비율을 보면 85.8%(2006)가 서비스업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와 같이 요르단의 교육열은 높았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Amman에 있는 요르단대학교 University of Jordan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학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대학들이 위치해 있었고 대학을 가지 못해 자살하는 일도 있었으며, 부모들은 학자금을 빌려서라도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빈부격차, 그 깊이가 큰 나라
카르푸, 메카몰 같은 초대형 쇼핑센터에서 한번에 몇 백만원어치를 사가는 사람들, BMW, 벤츠, 페라리 등의 고급 외제 차들이 즐비한 동네가 있는 반면, 집에 가구 하나 없이 사는 사람들, 돈이 없어서 최소생활비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라크전쟁으로 이라크의 부자 난민들이 요르단으로 몰려오면서 물가는 더 높아져가고있으며 점점 빈부의 격차는 커져가고 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는 MBC의 시사프로그램인 W에서도 방영이 된적이 있다.


동부암만 View of Eastern Amman
 현재 요르단은 중동의 안전한 국가로 인식되있다.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에서 아랍어를 배우로 온 젊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주변 국가에서 추방당한 목사 또는 선교사, 중동의 다른 나라로 가려는 사람들도 요르단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라크의 전쟁 난민, 이집트, 중국 등에서 일하러 온 많은 사람들도 있다. 위치적으로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스라엘,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에 둘러싸여있다. 이러한 위치적, 사회적 사실들을 봤을 때, 요르단은 중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진실이 왜곡된 이 시점에서 중동에 대한 신념을 깨는 일은 계속 되야할 것이다
/Tim /July 10, 2008

    요르단을 가다!

    중동에 대한 색안경을 벗어라! 신념은 진실이 아니다

    중동(Middle East)를 생각할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무엇일까? 테러, 두려움, 무슬림, 기름, 반미, 빈라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동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치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볼땐 전쟁중인 국가, 그래서 위험한 나라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남북의 대립, 유일한 분단 국가! 하지만 우리는 전혀 문제없이 살고 있다. 내가 가서보니 중동도 마찬가지였다. 중동의 사람들도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고, TV속의 스타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2008년 1월, 요르단을 갔다. 겨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겨울처럼 심하게 춥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가을’이었다. 겨울이지만 눈은 한해에 한두번 정도 내린다고 한다. 그리고 밤과 낮의 온도차는 크다. 그래서 추위가 더 느껴졌다.


    Queen Alia International Airport in Amman, Jordan

    모든 이슬람 국가가 그렇듯 요르단도 하루에 5번 모스크에서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요르단에 머무르는 동안 새벽 5시쯤 울리는 기도소리에 가끔 깨곤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무섭기도 했다. 이슬람 사람들은 기도시간이 되면 양탄자를 깔고 메카 Mecca مكة (이슬람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출생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 행정, 상업의 중심지)를 향해 기도한다. 어느곳에 가든 기도하는 많은 이들을 쉽게 만날수 있었다.

    중동의 많은 국가들의 수입원은 기름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요르단이 기름이 없는 중동의 국가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있는가? 그래서 요르단의 산업별 구성비율을 보면 85.8%(2006)가 서비스업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와 같이 요르단의 교육열은 높았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Amman에 있는 요르단대학교 University of Jordan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학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대학들이 위치해 있었고 대학을 가지 못해 자살하는 일도 있었으며, 부모들은 학자금을 빌려서라도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빈부격차, 그 깊이가 큰 나라

    카르푸, 메카몰 같은 초대형 쇼핑센터에서 한번에 몇 백만원어치를 사가는 사람들, BMW, 벤츠, 페라리 등의 고급 외제 차들이 즐비한 동네가 있는 반면, 집에 가구 하나 없이 사는 사람들, 돈이 없어서 최소생활비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라크전쟁으로 이라크의 부자 난민들이 요르단으로 몰려오면서 물가는 더 높아져가고있으며 점점 빈부의 격차는 커져가고 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는 MBC의 시사프로그램인 W에서도 방영이 된적이 있다.


    동부암만 View of Eastern Amman


     현재 요르단은 중동의 안전한 국가로 인식되있다.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에서 아랍어를 배우로 온 젊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주변 국가에서 추방당한 목사 또는 선교사, 중동의 다른 나라로 가려는 사람들도 요르단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라크의 전쟁 난민, 이집트, 중국 등에서 일하러 온 많은 사람들도 있다. 위치적으로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스라엘,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에 둘러싸여있다. 이러한 위치적, 사회적 사실들을 봤을 때, 요르단은 중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진실이 왜곡된 이 시점에서 중동에 대한 신념을 깨는 일은 계속 되야할 것이다

    /Tim /July 10, 2008


  14. Text
  15. 다시 시작하는 블로깅

    새롭게 블로그를 시작합니다! 

    오래 전에 티스토리Tistory에서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워드프레스Wordpress 파워풀한 툴에 반해, 한동안 워드프레스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 기반으로 블로깅하기에는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국내 블로그, 싸이월드Cyworld와 네이버Naver를 두고 비교해봤습니다. 일단 싸이월드는 무겁고 불안정한 부분이 있어서 네이버로 결정을 했습니다. 어제부터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글도 다시 쓰고, 사진을 넣으려고 하는데사진이 쉽게 추가가 되지 않더군요. 인터넷에서 알아보니, 인터넷 브라우저InternetBrowser 또는 파이퍼폭스FireFox에서 이용하지 않으면 네이버 블로깅이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크롬Chrome 사용하는 저는 네이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텀블러Tumblr 한글지원은 안되지만, 쉽고 빠르게 블로깅을 있어 급하게 텀블러로 이사오기로 결정했어요. 일단 다른 툴에 비해 빠르긴 하군요! 구글Google의 블로그스팟BlogSpot보다 디자인도 뛰어나고요! 많은 사람들이 놀러 오면 좋을 텐데


    +근데 나는 제대로 블로깅을 해 본적이 없다.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것에만 너무 집중했는데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블로깅을! 

ⓒ2010 inspired planet, Timothy S. Kim